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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생폼사?

죽기 전에 제대로 정갈하게 길어 올린 시집을 출간할 수 있을까? 메이저 출판사에서 펴낸 시인들의 글을 보면 마냥 부럽기만 하다. 이들은 어떻게 시를 통해 자기 삶을 이토록 잘 정돈해 냈을까? 글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맹물에 된장을 풀듯 온갖 재료를 더해 맛깔난 된장국이라면 첫술에 감탄부터 나올 것이다. 반면에 욕심만 시인이고 시를 잘 짓지 못하면서 행간만 나누면 시인줄 알고 고상 떠는 사람들도 많다. 열등감에 책욕심은 있으나 정작 읽지는 않는 사람들. 그리고 명함에 시인이라 글씨를 박고 다닌다. 윤동주 시인처럼 시대에 이름을 남긴 시인들 같은 치열함이 없이 가슴에 꽃만 단다고 시인이 될까? 근대의 시는 더 정교해지고 정밀해졌다. 글이란 끝없이 갈고닦는 칼과 같다. 시를 쓸 줄 모르면서 시인..

카테고리 없음 2024.07.03

프라하에서

어둠이 내려앉은 프라하 후미진 거리의 빵집. 빵값은 그리 비싸지 않았다. 프라하의 밤거리는 어둑했다. 링컨을 닮은 키 큰 사내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고 나는 빵이 들어있는 비닐백을 바라봤다. 사내를 불러 세우고 그중 큼지막한 빵을 건네주었다. 나름 그럴듯한 멘트를 생각하다. "이 빵이 너의 저녁식사다"라고 말했고 그는 내게 감사를 전하고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나의 대답은 간단했지만 속은 복잡했다. 그러게. 내가 왜 이 먼나라의 후미진 거리를 걷고 있을까? 그리고 한 여자를 생각했다.

카테고리 없음 2024.07.02

헝가리의 선인장

엄마가 키우던 선인장은 엄마를 따라 목숨을 끊었다. 죽지 않았다고 아버지는 소리쳤지만 분명하게 선인장은 죽었고 다음날 선인장이 뽑힌 빈 화분만이 여기 선인장이 있었다는 증거가 될 뿐 엄마도 엄마가 좋아하던 선인장도 사라졌다. 유럽으로 떠난 어느 겨울. 헝가리의 아파트에서 게발선인장을 만났다. 꽃잎이 붉은 게발선인장. 나를 반겨주는 것 같은 착각 창밖에는 눈이 수북이 내리고 있었고 나는 낯선 타국에서 소리 없이 울었다 헝가리의 겨울밤 거리는 추웠고 낮에는 볼품없던 풍경이 밤에는 금빛으로 아름다웠다. 유람선의 앞자리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한강에 뿌려진 엄마의 마지막 유언을 생각했다. 살아서 여행 한 번 못했으니 내가 죽으면 강물에 뿌려줘. 전 세계로 떠나고 싶어.엄마는 여기까지 흘러왔을까?

카테고리 없음 2024.07.02

고향길

내 고향은 어디지? 나의 고향은 근처에 있다. 하수구가 그대로 드러난 비포장 길 그 위로 포니 자동차가 지나가던 때가 있었다. 이웃은 돼지를 키웠고 벽돌공장을 했다. 정전도 자주 일어나 집집마다 촛불을 켰다. 가끔은 여기도 서울인가 하고 생각했다. 해바라기가 길가에 있고 코스모스가 때마다 바람에 흔들렸고 동산마다 개나리가 노랗게 물들던 시절. 어른들은 가끔 나를 보고 '울보'라고 놀렸다. 어른들은 아이들 놀리기를 즐겼다. 억울함이 목까지 차오르지만 아이들의 무기는 울음밖에 없었다. 살던 집에 불이나고 10일 뒤 입대를 했다. 그때의 눈물은 소년의 눈물과 달랐고 눈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비포장길에 갇힌 땅을 지날 때마다. 나도 땅에 갇힌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사람은 땅에 갇히고 집에 갇혀 살지..

카테고리 없음 2024.07.01

늙으면 칼럼도 쓰지 마라

100세가 넘은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정치칼럼을 읽는데 기가 차다. 나름 이분의 저서도 읽고 고령의 현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젠 아니다. 이양반의 식견은 한참을 기울어져있고 현 정부의 비판은 단 한 줄도 없이 민주당의 입법 폭주를 거론하며 윤정부는 협치를 원하는데 이재명의 민주당은 협치를 거부한다고 글의 서사를 끌고 간다. 더 나아가 이재명이 성공한다면 민주당은 국민의 배신을 면치 못할 것이고 실패한다면 민주당은 정당으로 존속할 수 없을 거라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부도덕한 지도자를 추대하는 당은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그토록 털었지만 이재명의 죄는 입증된 바가 없다. 그렇다면 윤석열의 검찰정부는 올바른 정부인가? 이제 그의 저서는 버리기로 결심했다. 시대가 어느 땐데 아직도 좌파타령이란 말인가?..

카테고리 없음 2024.06.28

노인이 되면

운동을 마치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허리가 ㄱ자로 꺾인. 할머니가 옆에서 걷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있어서 함께 걷지는 못해도 최대한 천천히 건너는데 어느 집 딸인지 이십대로 보이는 청년이 할머니옆을 천천히 할머니의 속도에 맞춰 걸으며 거의 다 건널 때쯤에는 상냥하게 말도 건넨다. 나도 모르게 미소와 코끝 찡함이 밀려왔다. 노인이 되면 모든 게 약해진다. 시력이 약해지고 관절이 약해지고 허리도 근육도 모든 게 약해진다. 아무리 운동을 해도 누구나 늙고 누구나 죽는다. 귀가 어두워져 잘 안 들리는 아버지는 얼마나 답답할까.. 아버지의 모든 것을 이해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복싱을 십 대 때부터 할걸~쉭쉭. 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여. 모든 무술은 호흡이 중요하다. 그리고 발과 허리. 손은 그다음이다.건강하게 ..

카테고리 없음 2024.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