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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빠진 한국축구협회

"내가 선배들에게 폭력을 덜 당했으면 축구를 더 잘했을 거다."박지성의 말이다. 눈치를 보면서 축구를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축구 선수에게 그라운드는 전쟁터. 적을 죽이는데 전쟁터에서 눈치를 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히딩크 감독이 오기 전 한국축구는 기회가 와도 곁에 선배선수가 있으면 패스를 했을 것이다. 축구협회의 고려대 카르텔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전두환의 '하나회'와 비슷한 명칭의 "열하나 회' 축구의 인원수로 지은 거겠지만 하는 짓은 전두환의 하나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예전에 유도선수였던 추성훈이 한국으로 귀화했을 당시 용인대 출신 심판들의 편파판정으로 추성훈은 올림픽도 아시안 게임도 출전하지 못하다가 한국 심판들의 짜고 치기가 통하지 않는 세계유도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한국의 ..

카테고리 없음 2024.07.23

폼생폼사?

죽기 전에 제대로 정갈하게 길어 올린 시집을 출간할 수 있을까? 메이저 출판사에서 펴낸 시인들의 글을 보면 마냥 부럽기만 하다. 이들은 어떻게 시를 통해 자기 삶을 이토록 잘 정돈해 냈을까? 글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맹물에 된장을 풀듯 온갖 재료를 더해 맛깔난 된장국이라면 첫술에 감탄부터 나올 것이다. 반면에 욕심만 시인이고 시를 잘 짓지 못하면서 행간만 나누면 시인줄 알고 고상 떠는 사람들도 많다. 열등감에 책욕심은 있으나 정작 읽지는 않는 사람들. 그리고 명함에 시인이라 글씨를 박고 다닌다. 윤동주 시인처럼 시대에 이름을 남긴 시인들 같은 치열함이 없이 가슴에 꽃만 단다고 시인이 될까? 근대의 시는 더 정교해지고 정밀해졌다. 글이란 끝없이 갈고닦는 칼과 같다. 시를 쓸 줄 모르면서 시인..

카테고리 없음 2024.07.03

프라하에서

어둠이 내려앉은 프라하 후미진 거리의 빵집. 빵값은 그리 비싸지 않았다. 프라하의 밤거리는 어둑했다. 링컨을 닮은 키 큰 사내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고 나는 빵이 들어있는 비닐백을 바라봤다. 사내를 불러 세우고 그중 큼지막한 빵을 건네주었다. 나름 그럴듯한 멘트를 생각하다. "이 빵이 너의 저녁식사다"라고 말했고 그는 내게 감사를 전하고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나의 대답은 간단했지만 속은 복잡했다. 그러게. 내가 왜 이 먼나라의 후미진 거리를 걷고 있을까? 그리고 한 여자를 생각했다.

카테고리 없음 2024.07.02

헝가리의 선인장

엄마가 키우던 선인장은 엄마를 따라 목숨을 끊었다. 죽지 않았다고 아버지는 소리쳤지만 분명하게 선인장은 죽었고 다음날 선인장이 뽑힌 빈 화분만이 여기 선인장이 있었다는 증거가 될 뿐 엄마도 엄마가 좋아하던 선인장도 사라졌다. 유럽으로 떠난 어느 겨울. 헝가리의 아파트에서 게발선인장을 만났다. 꽃잎이 붉은 게발선인장. 나를 반겨주는 것 같은 착각 창밖에는 눈이 수북이 내리고 있었고 나는 낯선 타국에서 소리 없이 울었다 헝가리의 겨울밤 거리는 추웠고 낮에는 볼품없던 풍경이 밤에는 금빛으로 아름다웠다. 유람선의 앞자리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한강에 뿌려진 엄마의 마지막 유언을 생각했다. 살아서 여행 한 번 못했으니 내가 죽으면 강물에 뿌려줘. 전 세계로 떠나고 싶어.엄마는 여기까지 흘러왔을까?

카테고리 없음 2024.07.02

고향길

내 고향은 어디지? 나의 고향은 근처에 있다. 하수구가 그대로 드러난 비포장 길 그 위로 포니 자동차가 지나가던 때가 있었다. 이웃은 돼지를 키웠고 벽돌공장을 했다. 정전도 자주 일어나 집집마다 촛불을 켰다. 가끔은 여기도 서울인가 하고 생각했다. 해바라기가 길가에 있고 코스모스가 때마다 바람에 흔들렸고 동산마다 개나리가 노랗게 물들던 시절. 어른들은 가끔 나를 보고 '울보'라고 놀렸다. 어른들은 아이들 놀리기를 즐겼다. 억울함이 목까지 차오르지만 아이들의 무기는 울음밖에 없었다. 살던 집에 불이나고 10일 뒤 입대를 했다. 그때의 눈물은 소년의 눈물과 달랐고 눈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비포장길에 갇힌 땅을 지날 때마다. 나도 땅에 갇힌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사람은 땅에 갇히고 집에 갇혀 살지..

카테고리 없음 2024.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