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08

개에 대하여

얼어붙은 밭에 배추들이 널브러져 있다.거둘 때가 지났는지 배추들은시퍼렇게 동상을 입고 있었다.근처 비닐하우스 앞에 묶여있던 때 묻은 개는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는다.항상 굳은 찬밥만 있는 양푼그릇이 안쓰러워 사료를 구매한 후 가끔 그릇에 담아줬지만남은 사료는 이제 쓸모가 없어졌다.문득 어릴 적 키우던 개들의 이름이 생각났다.유년에 잃어버린 '쫑'을 시작으로성은 개요 이름은 나리. 합쳐서 '개나리'나리의 새끼들은 구름이 두둥실 떠가는 듯 '둥실이' '둥돌이'그리고 토종진돗개 황구까지.엄마와 함께 개 이름 짓는 재미가 있었다.나리였는지 둥실 이었는지 기억이 가물하지만화단에 뿌려진 농약을 물인 줄 알고 마신 후 죽었다.기르던 개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건 힘겹다.그 모습을 엄마와 내가 안타깝게 보고 있었다.수돗..

카테고리 없음 2024.12.30

집 전화번호

10대 말부터 사용하던 집 전화를 오늘 해지했다. 전화가 있는 집도 있고 없는 집도 있던 시절.친구들끼리 한 친구네 집에 모여서 밤을 새기도 했다.입시철이라 학교도 가지 않던 때였다.친구들은 집에 전화로 "ㅇㅇ네 서 자고 갈게요"했지만 나는 집에 전화가 없어서왜 연락도 없이 마음대로 행동하냐는어머니의 말에 나만 집에 전화가 없자 않냐고어머니께 상처 주는 말을 했다.어머니는 바로 다음날 전화를 신청했고906 4004라는 좋은 번호를 받았다.휴대폰 시대. 집전화는 사용할 일이 거의 없었다.KT에 전화를 해보니 2012년에 가입당시설치비 19만 원을 이미 환급해 줘서 해지 환급도 없단다.휴대폰 등장 이후 매달 요금을 땅에 버린 셈이다.막상 해지하고 나니 머릿속에 화석이 된 번호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조금 들긴..

카테고리 없음 2024.12.26

나의 살던 고향은

어릴 적 놀던 운동장은 지금은 잘 꾸며진체육공원이 되었다.그 근처가 내가 자란 고향이다.그곳은 아직도 과거에는 산자락이었음을 말하듯나무들이 둘러서 있다.그러나 나는 그곳에 가지 않는다.머릿속에는 아름답던 내 고향 마을이 선명하고지금의 체육공원은 고향의 일부지만나는 애써서 그곳에 가지는 않는다.나는 지나간 것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일까?한 번쯤 돌이켜보면 엄마의 매를 피해 도망가던 길이다.교회에서 받은 선물들을 한 아름 들고 오던 길이다.친구들과 야구를 했던 공터이다.다방구 놀이와 술래잡기를 했던 마을이었다.방공호에 올라서면 구름이 손에 닿을듯한하늘이 있던 곳이다.그 언덕에서 우산을 펴고 낙하산이라고 여기며뛰어내리던 곳이다.아버지가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던 곳이다.작은 동산아래 있던 마을의 이야기가재개발..

카테고리 없음 2024.12.25

교회는 극우집단?

성가대 칸타타 연습 중 지난주에 못 온 얘기를하다가 탄핵집회 다녀온 후 몸이 안 좋아서못 왔다는 얘기를 간단히 탄핵 집회에 다녀오느라 못 왔다고 하니 일제히 시끄럽다.아유. 그런데를 왜 갔어?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이렇게 교회에 극우파가 많았던가.이 사람들이 광주 때처럼 총을 맞아봐야 정신을 차릴까?조금만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지면윤석열의 권력욕이 얼마나 극악무도했으면터무니없는 계엄령을 통해 내란을 일으켰을까?군인들이 준비했던 10000발의 총알은누구를 위해 준비했는지는 불 보듯 뻔하다.국방부장관은 모의를 꾸미던 사석에서 말했다.전부 탱크로 밀어버려.자신에게 충성맹세를 거절한 군악대 소령의허리를 부러트리고 입에 못 담을 험한 협박으로 가족을 위협한 대통령의 졸개들과장군들에게 요..

카테고리 없음 2024.12.22

여자노숙자

가끔 4호선에 보이던 여자노숙자가 있었는데요즘은 보이지 않는다.그녀는 허리가 ㄱ자로 굳었고 양손에는청테이프로 칭칭 감은 검은 봉지가 여러 개를잡고 있었고 무게 탓인지 양손으로 질질 끌고 다녔다.한 번은 봉지 짐을 놓고 열차를 기다리는 그녀를 보고그중 한 짐을 들어서 전철 안으로 옮겨줬더니그녀가 일갈한다."왜 익스큐즈미도 없이 남의 짐에 손을 대요?"불만 섞인 목소리로 사람들을 향해 소리친다."남자들 성추행하지 마세요."상처가 많은가 보다 생각하고 넘겼다.똑같이 태어나 왜 저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까.그리고 언젠가 수어예배를 드리기 위해청함교회로 이동 중 동작역 커피숍 앞 휴게 의자옆에서구석에 쪼그려 앉아 잠든 그녀를 보았다.얼마나 피곤한 삶이 지속되는 걸까?커피숍에서 파는 샌드위치와 생수 한 통을 사서 자..

카테고리 없음 2024.12.19

물고기의 잠

평생 떠도는 물고기 신세가 되어얼마나 많은 미끼들을 물고 살았을까입이 찢기고 아가미에 피가 흘러시간의 물에 피가 섞일 때까지얼마나 숨 가쁜 물과 밖을 오고 갔을까속도와 방향을 알 수 없는 물살이 달력처럼 찢겨나갈 때 가슴만 부여잡았다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파닥이다가물살 한 번 제대로 가르지 못하고꿈속을 날던 물고기의 깊은 잠그 잠결 위로 끝없이 짙은 비가 내린다

카테고리 없음 2024.12.05

비상계엄이라니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2시간여 만에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통과로 끝났다. 윤 대통령은 3일 오후 10시 23분부터 시작된 긴급 대국민 담화에서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며 비상계엄 선포 사실을 밝혔다. 이날 오후 11시부로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가 나왔다. 비상계엄 선포는 박정희 유신정권 말기인 1979년 10월 부마항쟁 당시부산지역에 9일간, 10월 이틑날인 1979년 10월 27일부터 1981년 1월 24일까지 439일간 제주를 제외하고 전국에서 시행된 게 마지막이다.45년 만에 비상계엄이 선포된 것이다.여야 의원들은 ..

카테고리 없음 2024.12.04

더덕을 사며

한 노인이 낡은 등산용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그의 앞에 놓인 더덕 한 봉지어르신~얼마예요?자다 깬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만원!돈을 지불하고 투명비닐에 당긴 더덕을 집어 드는데노인이 주머니에서 검정 비닐봉지를 꺼내 담아주려 한다괜찮습니다. 가방에 넣죠.물건은 두고 돈만 드리고 싶었으나궁색하지만 물건을 앞에 놓고 비닐봉지까지 준비하고 있는 마음을 걸인으로 격하시키고 싶지 않았다.낡고 지저분한 옷차림에 묻은 고생의 표정들을보는 순간 코끝이 찡했다돌아서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물건은 내가 샀는데 왜 내 마음이이토록 쓰리고 저미는 건지순간 부는 바람에 눈이 매웠다.

카테고리 없음 2024.11.28

늙어간다.

한때는 사람들이 십 년을 젊게 볼 정도로동안이었는데 가끔 거울을 보면 거뭇거뭇 기미가 보이고 늙어간다.인간은 늙고 병들고 결국에는 죽는다.겉멋 부릴 나이는 지났다.매일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단정하게 나이 들자. 주책 부리지 말자.자유도 지나치면 꼴불견이 된다.정치적 식견 없는 고집불통 늙은이가 되지 말자.나이가 많다고 세상살이에 능통한 게 아니고나이가 많다고 지식과 상식이 많은 게 아니다.패션도 말도 행동도 적절한 선을 유지해야 한다.나이 들수록 참을성이 사라진다.분노를 다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허세가 있어도 안 되지만 모든 것에 인색해서도 안 된다.적어도 세상에 무지하고 교만한 늙은목사들처럼 자신의 돈 아까워하고 남의 돈 아까운 줄 모르는배부른 돼지는 되지 말자.나이가 벼슬이 아니다.과거를 자랑하지 ..

카테고리 없음 2024.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