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설교가 자꾸 거슬릴 때는 어찌해야 할까?
한강 작가의 책을 일컬으며 그깟 '한강'작가의
책을 사려고 호들 값을 떤다고 폄훼하고
교회에 엘리베이터 설치한 것을 두고
자신이 와서 이룬 것처럼 두고두고 사골 우려내듯
매주마다 설교의 레퍼토리로 삼는다.
말은 하나님이 이루셨다지만 속내는
자신이 부임 후 일어난 변화의 자랑처럼 들린다.
매주 오늘은 또 어떤 소리를 할까?
엘리베이터 얘기. 성경 왜 안 보냐? 얘기, 헌금얘기.
성경을 보는지 안 보는지 어찌 알며 대부분 노인들인데
설령 성경을 좀 덜 보면 어떤가?
개인적으로도 이미 7독이 넘었고 매일 읽고
때론 켈리그라피로 필사한다.
설교가 마치 꼰대의 잔소리처럼 길고
설교 후 사족도 20분을 잡아먹는다.
왜 60대 목사들은 다 저럴까?
오늘은 부군의 장례를 마친 권사님 가족을 위로하다가
오직 사람만이 죽음을 인지한다고 했는데
이건 마치 중세의 무지한 학자들 같은 말로
중세시대의 학자들은 동물은 감정이 없다고 했고
동물에게도 감정이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는
마녀사냥하듯 죽이기도 했다.
그러나 제인구달 박사의 침팬지 연구나
그 외의 개나 고양이들 또는 코끼리나 까마귀들
같이 여러 동물들의 사례가 동물들도
죽음을 인지하고 슬퍼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인간만이 죽음을 인지한다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생각하고 인간만이
고통을 인지하는 것과 같은데
이건 지극히 인간중심의 오만한 발언이다.
바나나를 먹으려고 바위에 걸터앉아
지는 태양을 보며 곁에 바나나를 잊은 채
상념에 잠긴 눈으로 한참 동안이나 노을을 바라보다
바나나를 두고 천천히 숲으로 걸어 들어간
침팬지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늙은 개도 나이 탓에 거동을 못하다가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고 산책을 가자고
목줄을 주인에게 가지고 와
산책을 마친 후 숨을 거둔 사례도 있다.
목사님께 하고 싶은 말이 목까지 차오른다.
설교가 예배의 전부는 아니라지만.
목사님~ 박광리.옥한음.이찬수.유기성
이런 분들 설교 좀 들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