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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지 못한 편지

daywalker703 2023. 7. 31. 22:01

청년부 시절 시골 교회로 간 수련회.
팀을 나눠 거지순례를 하기로 하고 마을로 흩어졌다.
거지순례의 미션은 마을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고
밥을 얻어먹고 오는 것. 산간 오지다 보니
집들이 모여있지 않고 여기저기 동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집마다 사람이 없네.
어렵게 만난 동네 어르신에게 물으니
어느 집에 잔치가 있어 모두 그리로 갔다는 희소식?
조장이었던 나는 팀원들을 데리고 그 집으로 Go~
넉살 좋게 인사를 드리고 소개를 했더니
인심 좋게 우리를 방으로 안내했다

식사들 안 하셨죠?

넉살은 타이밍이다.

네. 안 먹었습니다.

동네 혼인잔치였다. 빈방에 들어앉은 우리 앞에
소박하지만 나름 진수성찬의 밥 상이 들어왔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운이 좋게도 인심 좋은 분들 덕분에
밥을 배불리 먹고 전도를 하러 나섰다.
(복귀 후 들은 바로 다른 조들은 쫄쫄 굶었다)
이제는 팀원들 각자 흩어져 개인전도.
나는 산 자락에 홀로 있는 초가집을  발견했다.
집에는 초등학생  여자아이와 엄마가 있었다.
사람이 반가워 넋두리를 하는 아이의 엄마.
결혼 전에는 교회를 다녔다고 한다.
문화시설이라고는 전혀 없는 산자락의 외딴집.
아이와 엄마는 섬처럼 외로워 보였다.

저도 서울에서 시집왔어요
오고 보니 완전 깡촌이에요

측은했다. 말씀을 전하고 아이를 위해
성경의 이야기보따리들을 풀어냈다.
아이는 나를 배웅하며 길고 먼 길을
쫄래쫄래 따라오며 재잘재잘 질문을 하고
나는 대답하고, 길이 길었지만  
학교 갈 때마다 다니는 길이라 아이는 괜찮다고 했다.
아이는 편지를 할 테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수련회가 끝나고 얼마 후 집으로 배달된 편지 한 통.
나와의 약속대로 교회에 다니겠다고
연필로 꼭꼭 눌러쓴 앙증맞고 귀여운 글씨들.

  꼭 답장해 주세요
기다릴게요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답장을 써야지.
대략 초안을 쓰다가 아이의 편지를 책꽂이에 놓고
며칠이 지났다.  그렇게 입대를 10일 앞둔 시월초.  
집에 불이나고 말았다.
아이의 편지도 재가 되어 주소를 알 수 없었다.
아이는 얼마나 나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을까?
교회를 통해서 알아볼 방법도 있었겠지만
집이 전소된 상황에 아무련 겨를도 없었다.
아이는 얼마나 실망했을까?
그 후로도 오래도록 아이의 해맑은
아이의 동심이 눈에 밟혔다.

편지 못해서 미안해


그 당시 나의 기도는 이랬다.

하나님
아이의 손을 잡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