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친구네 집에서 차를 마시기 위해
투명 유리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있었다.
그때 외출했던 어머니가 들어오셨고
나는 인사를 건넸다. 어머니는
물이 끓는 유리주전자를 보더니
"그거 안 깨지나?"
"네 어머니. 이거 안 깨지는 거예요"
다음에 갔을 때 그 주전자가 보이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어머니가 주전자를
숨겨놓은 것이다.
한 번은 친구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잔을 찾다가 싱크대 안에 처벅혀 있는
머그컵을 발견하고 어머니에게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엄마. 아. 여기 컵 있네. 이거 있는 줄도
모르고 여태 그릇에 커피 마셨잖아."
( 자그마치 15년 이상을 )
그 컵은 다름 아닌 대학졸업 때
총학생회에서 졸업기념으로 준 것이었다.
어머니의 대답은 이랬다.
"아껴야 잘살지."
친구네는 이미 오래전부터 집 근처에
전철역이 들어선 탓에 집을 팔고
그 돈으로 3층 빌라를 구입한 임대인
소위 세입자들의 집주인이었다.
컵이나. 주전자 같은 물건을 아껴서
부자가 된다는 논리는 무엇인가.
결국 어머니도 돌아가셨고
친구도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접시며 컵이며 주전자며
잡다한 주방 살림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고인이 됐다.
궁상을 검소로 착각하고 살다 간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