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11시 예배가 끝나면
MBC9시 뉴스 수통사이자
총신대 교수인 모상근 목사의 교회로
2시 예배를 한동안 다녔다.
그때 알았다.청인과 농인이 함께하면서
다 같은 사람임을. 그리고 내가 목소리를
낼 수 없을 때에도 손으로 찬양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타인의 결점을 보고 비교적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마리아 여인같지 않음을 감사하는
기도하는 유대여인이 되지말라고 교회에서 배웠다.
어느 목사와 수어에 관해 대화하다가
내가 묻기를 "목사님들도 수어를
신학교때 선택과목이라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목사님 답하길"하는 분들만 하면 되죠"
내가 다시 묻기를 "목사님 지역에
농인들만 있다면 목사님은 전도 못하시겠네요?
목사님 다시 답하길"제 생각이 짧았네요"
나도 완벽한 수어가 아니라 수시로 공부한다.
수어는 몸의 언어다. 내가 진짜 삶에 지쳐
눈물이 나고 목이 매여 소리를 내기
힘들 때에도 손으로 기도할 수 있다.
손으로 함께 찬양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수어찬양을 해보면 온 맘과
정성을 다해 드리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가끔 때론 자주 생각한다.
하덕규 목사의 첫 복음송가 '가시나무'의
가사처럼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자아가 신앙의 걸림돌이 된적이 얼마나 많은가.
어머니가 섬기던 교회에서
어머니가 없는 공간에 성가대로 선다.
이건 마치 어릴적 침례식에서
'윌리엄 빌 백' 목사님의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 하쎘쎄요? 질문에
"아멘"이라고 대답하던 아들을 감사로 바라보던
어머니와의 무언의 약속을 지키는 것과도 같다.
신앙을 잃지 말라는 어머니의 유언.
이게 오늘 내 믿음의 뿌리이다..
인간의 성격을 죽이고 예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
주기도문송을 수어로 할 때 더 깊이 느낀다.
인간은 결국 들판의 풀과 같을까?
문득 내 어머니가 그리운 저녁
손으로 불러본다. "내 평생 살아온 길,
뒤돌아보니 짧은 내 인생길, 오직 주의 은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