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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편지
daywalker703
2024. 4. 1. 10:03
아버지 얼굴에 먹구름
유효기간이 끝난 치아가 3개나 빠져나갔다
코알라가 매일 유칼립투스 알코올에 취하듯
아버지도 매일 술 한잔에 취해있다
그 한잔들이 배추벌레처럼
수십 년 동안 아버지의 뇌를 갉아먹었다
귀가 흐려져서 말이 잘 통하지도 않는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단편소설
장편의 서사는 없다
꽃피는 봄날에 가시려는지
아버지가 종이 한 장을 건넨다
읽어보니 유언장이다
아버지 사는 동안 몇 번의 봄이 있었을까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인생을 잘못 살았지만
너는 영원히 행복하길 바란다
통장에 있는 돈은 얼마 안 되지만
장례비로 쓰기 바란다.
사는 동안 아버지가 내게 준 것은 서러운 기억들
아버지 가기 전에 사과 한마디라도 듣고 싶었던
앙금이 허물어지는 순간,
한평생 내 발목을 꼭 잡고 있던
아버지의 굳은 손이 스르르 풀려나갔다